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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 해전' 이후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추가 건조하지 않은 이유

똥베이런 2017.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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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한국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전략 병기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발명품으로 평가받는 거북선을 이순신 장군이 '칠천량 해전' 이후 추가 건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칠천량 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최악의 흑역사로 평가받는 해전입니다. 또한 '칠천량 해전'으로 인해 조선 수군은 전투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데요.



'칠천량 해전' 이후 이순신 장군은 조선 조정에 의해 관직이 복원되었고 2차 백의종군 이후 복직 된 이순신 장군이 치룬 전투가 바로 '명량해전'입니다. 또한 '명량해전'에서 일본군의 우회로를 차단하면서 조선 수군은 남해안을 재장악하고 조선 수군 재건의 기반을 만들게 되는데요.



하지만 조선 수군은 백성들의 도움과 흩어진 병사들이 모이면서 짧은 기간에 수 많은 판옥선을 건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판옥선을 이끌고 이순신 장군은 철수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명나라 수군과 연합하여 출정하게 되는데요.



'노량해전' 출정 당시 조선측 기록을 살펴보면 '명량해전' 이후 조선 수군은 판옥선을 추가건조하지 않았고 판옥선 건조만 집중해서 재건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조선 수군은 조선 수군의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는 '거북선'을 추가 건조하지 않았을 까요?



'명량해전' 이후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추가 건조하지 않았던 것은 거북선 자체가 원래부터 소수만 건조되었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명량해전' 이후 조선 수군은 '거북선'을 추가 건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북선을 추가 건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거북선'은 돌파용 전략함선일 분이지 '판옥선' 처럼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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