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을 취재한 해외 언론들의 한국군에 대한 평가
베트남 전쟁은 한국에서는 월남전이라고 하며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은 베트남 전쟁이라고 사용한다고 합니다. 영국과 청나라의 전쟁이었던 아편전쟁,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과 더불어서 목적과 명분이 없는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초강대국이라고 불리고 있는 미군 역사상 최초로 패배한 첫번째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자유 월남의 자유로운 미래를 위한 한국이 이룩해 온 크나 큰 공헌이 17년 전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도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명이 되고 있다.
- 리처드 닉슨(Richerd Nickson), 1967년 12월 17일 -
노획한 베트콩 문서에 의하면 베트콩은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하도록 지시가 되어있다.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이니 비무장한 한국군인에게도 함부로 덤비지 마라.
- 뉴욕 타임즈(Newyork Times), 1966년 7월 22일 -
월남의 모든 사람을 다 제쳐놓고 60만 한국군에게 전쟁을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 5만에 불과한 한국군은 적의 구정 공세 기간 중 전술 책임 구역 내에 침입한 적을 단 하루만에 격퇴했다. 베트콩의 항불전쟁 이래 베트콩에 장악되어 있던 중부 해안 지대가 지금은 한국군에 의하여 완전히 통합되고 있다.
- 미국 에반스빌 저널(America Evansville Journal), 1968년 3월 -
월남에 있는 미국인들은 전투에 있어서나 평정사업에 있어서나 한국군을 최고로 높이 평가한다. 사실 한국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일부 미군들은 미군이 한국군의 전술을 배워도 좋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마치 미국은 한국이라는 비범한 학생을 가르치는 학생이 된 거와 같습니다 어느날 아침 교실에 와서 선생님 미국보다 학생인 한국군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한 미국 관리는 심각하게 말했다
- 뉴스 위키,(News Wiki) 1967년 4월 10일 -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하였을 당시 이 한국군은 지금의 월남군과 같았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떠나, 철원의 고지를 떠나, 그리고 인천항, 부산항을 떠나 수천만리 이역 땅에서 다시금 공산주의자와 싸우고 있다.
- 옵저버(ObServer) 1967년 5월 24일 -
한국군은 우군 피해에 대해서 15:1 이라는 비율로 적을 사살했으며, 프랑스와 월남이 20년간 시도하다 실패한 빈딩성의 늪지 해안으로부터 적을 추격하여 격파 시켰다. 기본적인 한국인의 특성으로 지적할 만 한 것은 불굴의 정신이다. 맹호, 백마, 청룡 용사들에 대하여 적이 조심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노획된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문서에 의하며 한국군과는 가급적 접전을 피하도록 전 병사들은 명령 받고 있는 것이다.
- 사이공 포스트(Saigon Post), 1968년 3월 20일 -
만일 한국군이 전 월남을 장악하였거나 미군들이 고보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더라면 월남전은 벌써 승리하였을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96km나 자동차로 달려도 총격도 복병기습의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월남 지역의 그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이 할자는 한국군 이외는 아무도 없다.
- 영국 런던 타임즈(England London Tiems) -
한국군의 전술과 미군 전술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즉각 2개 내지 그 이상의 방향에서 공격을 가하여 베트콩이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미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뒤로 물러나 포병지원을 요청하거나 공중폭격을 요청한다. 그 다음에 공격을 하게 되니 적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다
- 미국 하원의 증언록에 실려있는 하원 국방위원장의 증언 -
12년간 수백만발의 포탄을 쏘아대고 수천명의 전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과 월남군, 미군에게마저 실패와 좌절을 안겨준 공산군의 요새를 한국 해병대가 단 두시간만에 점령했다, 도대체 우리 연합군에게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 2시간의 전투결과보고는 단 세마디였다.. " 목표제압완료, 아군 피해 무, 생포한 적 압송중!! "
- 프랑스 언론지 르몽드 (Le monde) -
참고 및 출처 : 세이밀리,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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