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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이유

똥베이런 2018.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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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은 왜 일본의 수도가 아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떨어트렸을까요? 미군이 2차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유럽전선에서는 독일이 항복을 하고 유일하게 남은 일제가 남았는데 미군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떨어트리고 나서 일제는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이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한 도시는 4곳으로 교토, 히로시마, 니가타, 고쿠라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미군의 목표도시는 첫번째 기준으로 지름 3마일(4.82km)이상의 큰 도시이며 중요한 역활을 하는 도시로 선정을 해야만 했었다고 하는데요. 미국의 입장에서는 원폭 트하시 효과적인 손해를 입힐 수 있는 도시를 원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는 첫번째와 두번째 조건에는 맞아 떨어졌지만 세번째 조건에는 맞지 않았는데요. 당시 도쿄는 대규모의 "네이팜 탄" 폭격으로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조건에 충족하지 못한 도쿄를 제외하고 4개의 도시에서 고민을 하던 미국은 먼저 교토를 첫번째 후보지로 거론하게 되었고 교토는 인구가 100만이 넘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적합한 목표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미 전쟁성 장관이었던 헨리 스팀슨이 교토를 목표로 하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하였고 반대를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신혼여행으로 일본의 교토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역사와 문화는 보호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헨리 스팀슨의 주장으로 미군은 교토 폭격은 일본의 정신을 건드리는 행위라는 이유로 원폭 대상에서 교토를 제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남은 도시 중에서 미군은 히로시마와 고쿠라를 원폭 대상 도시로 최종 선정하게 되었고 하지만 결국 현대인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본토에 미군이 원폭을 투하한 장소로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로 알고 있습니다.



미군은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를 투하하고 고쿠라에 팻맨을 투하하기 위해 폭격기를 뛰었는데요



하지만 고쿠라시에 도착한 폭격기는 안개가 너무 많아 고쿠라시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미군은 시야확보가 불가능한 고쿠라시에 원폭을 투하하지 않고 연료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나가사키에 팻맨을 투하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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