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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당한 이유 6가지

똥베이런 2017.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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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말기 칠천량에 주둔하고 있는 조선 수군은 왜군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전투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정유재란이 일어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이 존재하는데요. 무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조선 수군이 전투력을 상실한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선조의 무능력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은 선조였습니다.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백의종군 시킨 후 후임으로 경상우수사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는데요.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요구했던 군령을 원균에게 똑같이 하달했습니다. 선조의 이러한 인사명령은 정유재란이라는 전쟁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의 평가입니다.



무능한 지휘관


이순신 장군의 후임인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 되고 난 후 조선 수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판옥선을 잃거나 왜군과의 전투에서 제대로 된 지휘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원균은 도원수 권율에게 곤장을 맞게 되는데요. 군 조직의 지휘관이 무능력하면 군 전체의 존립이 성립될 수 없다고 합니다. 



군율의 붕괴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백의종군인 상태에서도 전라좌수영의 휘하 장수들이 이순신 장군을 자주 찾아갔다고 합니다. 특히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에는 조선 수군의 지휘관들을 포함한 조선 수군의 병사들이 원균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으로 인해 군율이 붕괴된 것이 칠천량 해전의 패배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왜군의 기습공격 허용


세계의 전쟁사에는 첩보전은 중요한 전략이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균은 탐색전을 허술하게 하고 술을 퍼마시면서 움직일 생각을 전혀 안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동태를 탐색한 왜군은 기회를 잡아 조선 수군을 기습공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원균이 초병의 관리와 탐색전만 잘했어도 칠천량 해전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모들의 지휘관에 대한 불신임


이순신 장군의 백의 종군 이후 전라좌수영의 핵심 지휘관들은 대부분 사직을 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원균의 후임자로 경상우수사에 임명된 권준의 경우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자 사직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의 기록을 보면 전라좌수영의 장수들이 이순신 장군을 찾아와 원균의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퇴각 명령


칠천량 해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은 왜군의 기습 공격을 받자 후퇴 명령을 내렸다고 하는데요. 어처구니 없게도 육지로 퇴각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왜군과 백병전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도 육지로 퇴각 명령을 내리기 전 조선 수군의 병사 절반은 도망간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후 육지로 퇴각한 원균 자신을 물론 조선 수군의 병사들을 왜군과의 백병전에서 전멸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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