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북한 주민들의 해방을 위해 북한 민주화에 앞장섰던 인물

똥베이런 2017.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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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차세계대전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인해 한반도는 일제로부터 해방하였습니다. 이후 북한 지역에는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북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였는데요. 북한에서 발표된 연설문에 대한 폭로를 하면서 북한 민주화 및 평화통일 자문활동을 했던 인물을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북한 해방재단 정상진 이사장

(1918년 ~ 2013년 6월 15일)


정상진 이사장은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태평양 함대 직속 해병대 소속으로 한반도 상륙작전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또한 해방 이후 북한의 문화선전성 제1부상을 지낸 대표적인 소련파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정상진 이사장은 1918년 현재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하였다고 합니다. 정상진은 소련의 체제를 믿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소개해주기도 하였는데요. 1937년 8월 제빵공장의 노동자였던 부친이 체포되어 총살당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로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하여 정상진 이사장의 가족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1940년 크즐오르다주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크즐오르다주의 중등학교에서 문학교사로 지냈다고 합니다.



정상진 이사장은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소련의 태평양 함대에 입대하여 웅진, 청진, 나진 등의 상륙작전에서 활약했다고 하는데요. 이 공로로 소련으로부터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고 합니다. 



정상진 이사장은 해방 이후 소련 정치부의 지시로 1945년 9월 19일에 원산항으로 귀국하는 김일성을 마중했다고 하는데요. 정상진 이사장은 김일성이 '김성주 입니다.' 라고 인사하는 김일성을 알아보지 못했고 소련 정치부에 김일성은 없었다고 보고하였지만 사실 김성주라고 인사하는 사람이 김일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3년 간의 소련군정의 통치가 끝나고 정상진 이사장은 소련의 정책에 따라 김일성 종합대학 러시아 어문학과 학과장직을 지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을 지내다가 1952년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역임했다고 하는데요. 정상진 이사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1957년에 숙청되었다고 합니다. 숙청 이유는 최승희, 홍명희 같은 인물들을 비호했기 때문인데요. 



정상진 이사장은 숙청 이후 소련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소련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했다고 하는데요. 1991년에는 소비에트 한인재단 이사장직을 지냈으며 1992년에는 북한 민주화 및 해방재단의 이사장을 겸임했다고 합니다. 특히 정상진 이사장은 1989년부터 여러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소련의 정책, 김일성 관련 등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폭로 내용 중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1945년 10월 19일에 있었던 소련군 환영대회는 소련의 각본이었다고 폭로했으며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소련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폭로했는데요. 정상진 이사장은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회원으로 참여하여 북한 민주화에 대해 자문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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