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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승병'들의 기록이 미비한 이유

똥베이런 2018.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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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버린 국제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불교를 섬기는 스님들은 무기를 들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승병'들의 기록이 미비한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불교의 스님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고통받자 무기를 들고 전투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승병'들은 '의병'못지 않게 일본군에게 위협적인 조직이었다고 하는데요.



조선이 물론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가 아닌 '유교'를 국교로 지정하면서 불교를 배제하기 시작했지만 조선의 백성들은 종교적으로 '불교'에 많이 의지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조선 백성들의 '불교'에 대한 존경심과 의지로 인해 '조선 백성'들은 불교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백성들은 국왕 '선조'에 대한 비판은 했지만 국가를 지키위해 싸운 '불교'를 절대로 욕을 하지 못했던 것인데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징비록', '난중일기'에는 부족한 병사들을 채우기 위해 불교에 요청하여 병력을 충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국가를 지키기 위해 활약한 '승병'들의 기록이 미비한 것은 그들을 비판할 명분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에게 고마워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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