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말하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3대오물 (feat.대한민국의 숨겨진 국가유공자)
2차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제국의 패망을 앞당긴 일제의 고위급 장성급 3명을 묶어서 현대 일본인들은 그들을 삼대오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의 우익성향의 네티즌들 역시 이들을 옹호해주거나 방어해주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국가 수뇌부가 무능하면 나라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타구치 렌야
무타구치 렌야는 일제의 장군으로 도미나가 교지, 츠지 마사노부와 함께 무능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유명한 희대의 팀킬인 임팔 작전 등으로 일본군 수 만 단위를 팀 킬 시킨 역사에 길이 남을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중 하나입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일본군 지휘관답게 수 많은 실패에도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요직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무타구치 렌야는 일본의 우익성향의 네티즌들 역시 옹호하거나 방어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기야마 하지메
스기야마 하지메는 일제의 총리이자 전쟁범죄자로 유명한 도조 히데키와 함께 태평양 전쟁의 개전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임팔 작전 승인 당시 대부분의 참모장과 작전과장들이 무타구치 렌야의 임팔작전에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작전이 아닙니다."라고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스기야마 하지메는 임팔작전 계획안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같은 파벌이라는 이유로 최종 승인을 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스기야마 하지메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유 때문에 무타구치 렌야와 도미나가 교지에 비하면 그나마 양심을 가진 군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도미나가 교지
도미나가 교지는 1944년 일제의 남방 전선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제4항공군 사령관으로 취임했다고 합니다. 도미나가 교지는 총 62회 카미카제를 시도하여 별 소득없이 일본군의 400여 기의 전투기를 잃었다고 하는데요. 1945년 1월 미군이 필리핀 공략을 시작하자마자 항공군 총사령관 주제로 적전 도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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