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역사적으로 태종 이방원을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 7가지

똥베이런 2017. 5. 21.
반응형


조선의 3대 국왕인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으로 국왕의 자리에 올른 것으로 한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흑역사도 흑역사지만 조선의 3대 국왕으로 근대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기틀 마련


태종 이방원은 자신의 형인 정종에게 왕위를 양위 받은 후 왕권 위주의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고려를 망해게 만든 사병제가 아닌 관료들이 사병을 보유할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 조정 중심의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악인이 되었던 왕


한글을 창제하고 한민족으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세종대왕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입니다. 세종대왕이 업적을 쌓을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것이 바로 아버지 태종 이방원 인데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종 이방원은 아들 세종을 지극히 아꼈다고 합니다.



관제 정비


이방원은 왕위를 계승하는 정통성에 있어서 취약했기 때문에 기존 고려 시절의 인물을들 대거 포섭하여 국정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특히 의정부라는 조직을 설치하면서 국가의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합니다.



사병제 폐지


태종 이방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사병제 폐지입니다. 이방원은 자신의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했기 때문인데요. 이방원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사병제를 무조건 폐지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공신들이 두려했던 왕


태종 이방원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공신들만 숙청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공신들에게는 무자비했다고 하는데요. 이방원은 공신들을 숙청하기보다도 유배를 보내면서 실권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숙청을 한 공신들은 주로 자신과 자신의 아들에게 위협이 된 인물들만 숙청했다고 하네요.



백성들에게는 관대한 왕


조선 건국 이후에는 조선 내부의 민심은 그다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 건국 이후 조선의 민심이 수습된 것이 바로 태종 이방원 시절이라고 하는데요. 태종 이방원은 공신들에게는 무자비할지 모르지만 백성들에게는 따뜻하고 관대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태종 붕어 이후에는 백성들은 아들 세종을 믿고 따랐다고 합니다.



한국 역사상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한 왕


태종 이방원은 정도전의 2차 요동정벌을 반대하면서 까지 친명파로 극히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실제로 당시 정세를 살펴보면 요동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 군은 명나라 군에서도 최정예부대였습니다. 국왕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친명정책을 펼치면서 한국 역사상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한 시절이라고 합니다.


<글쓴이 추천 글 링크>

고구려가 동북아 최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던 5가지 비밀

북한 김정은이 극도로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 6가지

만약 북한 김정은이 사망한다면 가장 유력한 북한 지도자 후보 3인

당나라가 고구려 멸망의 의지를 꺽지 않은 4가지 이유

연개소문이 반정을 일으킨 이유 7가지


이 글이 재미있거나 유익하셨다면 로그인이 필요없는

아래에 있는 <공감> 버튼 한 번 눌러주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