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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폐위당한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유 5가지

똥베이런 2018.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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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에서 쿠데타로 인해 왕권을 차지한 것에 대해 반란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반정이라고 규정한다고 합니다. 반정이라는 뜻은 반란을 통해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성군이었지만 폭군으로 평가받는 광해군이 쫓겨난 인조반정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해군의 친 청나라 정책


광해군은 조선의 국왕으로 취임한 후 명나라를 멸망 시킨 청나라와 교류를 통해 친 청나라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관료들은 이러한 광해군의 정책을 비판하였는데요. 이유는 우리를 도와준 명나라를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대부간의 세력 싸움


조선시대 양반들은 서인과 남인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애 류성룡 등도 서인, 남인과 같은 파벌에 속한 인물들이었는데요. 광해군은 서인세력에 의해 왕자리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농민경제 파탄


광해군 시절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농민경제가 파탄되었다고 합니다. 민생을 돌보지 않고 궁궐을 짓는 등 백성들과 지식인들에게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공정하고 판단력이 빠른 관료들에 대해서는 임기가 끝나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연임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영창대군이 죽음


영창대군은 선조의 아들이자 광해군이 즉위한 후 서인으로 강등되어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합니다. 인조반정 3년 전에는 영창대군의 죽음을 지적하면서 능양군의 외삼촌 격이었던 구굉이 최명길 등과 같은 대신들을 포섭하여 반정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부정부패 고발 무시


광해군은 궁궐재건 공사에 있어서 광해군은 조도사라는 관리를 파견해보냈는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조도사들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최대 100배까지 징수하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짰다고 합니다. 이후 조도사들의 부정부패를 지방관리들이 광해군에게 고발했지만 광해군은 고발을 무시하고 조도사들을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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