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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끝판왕이라 불리는 서희가 대단한 이유 4가지

똥베이런 20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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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장군은 무관 출신이 아닌 문관 출신의 장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희 장군은 말로써 거란족 장군 소손녕을 설득하면서 거란군을 회군하게 만들었고 강동6주를 얻게 되면서 압록강 일대까지 고려의 영토를 넓혔는데요. 외교 끝판왕 서희 장군이 대단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담한 배짱


서희 장군은 문관 출신으로 상당히 뛰어난 외교관이었다고 합니다. 고려 광종시절에는 북송과 단절된 외교를 정상화 시키는 등의 많은 활약을 했다고 하는데요. 소손녕의 거란군이 고려를 침략 할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서희 장군은 소손녕과의 담판외교를 하기 위해 거란군 본진에 들어가는 배짱을 보여주었습니다.



말로써 얻은 강동 6주


TVN 어쩌다 어른에서 "식사를 합시다" 설민석 한국사 강사는 제1차 여요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외교문제와 영토 침범이라고 강의하였습니다. 실제 고려사절요 서희편에는 소손녕이 "너희 왜 우리 땅 침범해?" 그래서 우리가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온거야라고 하였다고 하는데요. 서희 장군은 "님아? 원래 압록강 일대는 우리 조상인 고구려 영토에요. 그거는 솔직히 돌려주세요" 라고 말했고 외교적인 문제로 거란으로 부터 강동6주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군 피해 최소화


실제로 소손녕이 이끌고 고려를 침략한 병력은 80만이라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현대에 들어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대략 8만 명 정도의 병력이지 않았나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특히 고려가 거란과의 외교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도 1차 여요전쟁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데요. 서희 장군은 "여진이 거란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어 사신을 보내기가 힘들다." 라고 소손녕에게 말을 하자 강동 6주와 더불어 선물을 주고 요나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거란의 병력 간파


현대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소손녕의 병력은 8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서희 장군은 외교관이라는 특수직업을 가진 인물이라 거란의 병력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뛰어난 안목으로 동아시아 정세를 파악하여 이러한 배짱 외교를 펼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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