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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라 불리던'시라소니'가 동북아 역사 상 최고의 싸움꾼인 이유

똥베이런 2018.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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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절 서울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김두한' 전 의원 역시 시라소니 이성순을 형님으로 모셨다는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시라소니 이성순'은 동북아 역사 상 최고의 싸움꾼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시라소니 이성순'이 동북아 역사 상 최고의 싸움꾼으로 평가받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이북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으로 넘어가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에서 난다 긴다하는 싸움꾼들을 모두 제압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인데요.



'시라소니 이성순'은 일제 해방 이후 해방 된 조국으로 돌아왔고 중국에서 생활한 경험 때문에 공산주의 세력이 점령한 이북으로 가지 않고 남한으로 귀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북청년들로 구성 된 조직에 몸 담으며 주로 명동에서 생활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김두한' 전 의원 역시 '시라소니 이성순'은 중국 대륙에서 이름 난 싸움꾼들과 싸워 한 번도 진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시라소니 이성순'은 중국 대륙에서 생활했을 당시 일본의 '최배달' 처럼 도장깨기를 하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보였다고도 하는데요. 



'시라소니 이성순'은 까막눈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북청년들에게 자신이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제 해방 이후 당한 '시라소니 린치사건' 이후에는 목사로 전향하여 종교인으로 생활했다고 하는데요.



물론 '시라소니 이성순' 역시도 흑역사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 흑역사가 바로 '조봉암'선생 호위를 그만 둔 일입니다. 하지만 시라소니는 '시라소니 린치사건'으로 인한 휴율증으로 1952년 '조봉암' 선생 호위를 피했던 것으로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는데요. '시라소니 이성순'은 일제강점기 시절 김두한 전 의원 역시 형님으로 모실 만큼 중국, 한국, 일본에서 상대할 만한 적수가 없었던 최강의 싸움꾼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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