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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이 발생한 이유

똥베이런 2017.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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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을 일본으로부터 구해 낸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전투는 바로 '노량해전'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 의해 백의종군 이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참패를 당하자 조선 조정에 의해 삼도수군통제사에 재등용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재등용된 후 첫 전투가 바로 세계 해전사에서 전설로 통하는 '명량해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명량 해전'에서 승리 후 남해안을 재장악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 수군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리고 '칠천량 해전'에서 흩어진 조선 수군 병사들이 이순신 장군이 복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군에 다시 합류하게 되는데요.



이후 조선 조정은 조선과 명나라 육군, 수군이 합동으로 순천 왜교성을 공격하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조명 연합 육군이 순천 왜교성을 공격 시 조명 연합 수군은 육군을 지원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명연합군이 6차례 순천 왜교성을 공격했지만 6차례 모두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선 조정이 순천 왜교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순천 왜교성에 있던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를 잡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요. 또한 조명연합이 순천 왜교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명나라 육군이 순천 왜교성 공격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598년 8월 18일 일본군 통수권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사후 정권을 위임받은 '고다이로', '고부교' 들은 조선에 주둔한 다이묘들의 철수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본국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쟁에 진절머리가 났던 다이묘들은 최대한 빨리 철수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 장군은 그들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순신 장군은 7년 간 조선에서 악행을 저지른 일본군과 다이묘들을 죽여 그들에게 복수를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즉,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은 7년 전란의 복수심과 다시는 조선을 넘볼 생각을 못하도록 하게 위해 노량에 출정했고 그 것이 바로 '노량해전'이 된 것인데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얼마나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야 말로 노량에 조선 수군이 출정을 결심한 것은 7년의 아픔을 복수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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