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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에서 조선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똥베이런 2017.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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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 지휘 아래 위대한 승리를 이룩한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3대 대첩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10배가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막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행주대첩' 당시 조선측 지휘관은 권율 장군으로 당시 조선측 병력은 2,700명 가량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행주산성에 일본군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권율 장군은 인근 백성들을 동원하여 행주산성에 방어진을 설치했다고 하는데요.



방어진과 더불어 조선군은 당시 조선측 신무기들을 적절하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발명한 '비격진천뢰'는 수류탄과 같은 역활을 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살상이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조선군은 조선의 다량발사무기인 '신기전'을 후방에서 발사하여 접근을 막았다고 합니다. 또한 접근하는 적들은 개량된 '화차'를 이용하여 살상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행주대첩' 당시 조선측에서 사용한 화포는 굉장한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 이순신 장군이 권율 장군을 만났던 자리에서 이순신 장군은 권율 장군에게 대량의 화포를 넘겨준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행주대첩' 당시 조선측은 화차, 화포, 비격진천뢰, 신기전 등의 무기를 활용하여 왜군을 접근조차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또한 '행주산성'을 공격하는 왜군은 6차례에 걸쳐 공격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하는데요. '행주대첩'이라는 위대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지휘관의 적절한 무기 사용과 조선측 신무기들의 활약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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