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언제부터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을까?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19대 국왕으로 세종대왕과 더불어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부르는 군주입니다. 또한 광개토대왕은 한민족 역사 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으며 이로 인해 한민족 역사 상 최고의 정복군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언제부터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개토대왕이 국왕에 즉위한 후 남쪽에 있는 백제와 신라의 조공을 받았으며 위로는 거란족과 말갈족을 복속시켜 거대한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또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북경 인근까지 고구려 깃발을 세우며 고대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위엄을 떨쳤는데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신라와 당나라의 협공으로 고구려는 멸망했고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고구려 멸망 후에는 발해와 신라가 대립했던 남북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까지 거쳐지나갔는데요.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조선 말기라고 할 수 있는 '구한말'부터라고 합니다. 조선 말기(구한말)에 역사전문가들에 의해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이 알려지고 나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인데요.
실제로 조선 말기(구한말)에 일제가 침략하자 역사학자들은 한민족의 민족주의적 자긍심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알리고자 했다고 합니다.
즉, 단군을 섬기는 대종교 역시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태어났듯이 광개토대왕의 업적 역시도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알려지게 된 것인데요.
광개토대왕비에 적혀있듯이 고구려 광개토대왕 사후 이후 그의 아들인 '장수왕'이 그를 기념하는 '광개토대왕비'를 세우지 않았다면 일제 시절 민족의 자부심을 인식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광개토대왕비'가 없었더라면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물론이고 고구려 역시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역사를 빼았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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