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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인류 역사상 최대 인해전술

똥베이런 201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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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22일 일요일 새벽 4시, 독일군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독일군 166개 사단 (총 병력 4,306,8000명)


야포 42,601문

전차 4,171대

전투기 4,389대



엄청난 병력을 동원한 독일군은 소련 서부 공업지대가 타격을 받으면 소련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독일의 히틀러는 노동자들은 모두 징발대상이며 파시스트들이 다가오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중공업 지대를 지나 우랄산맥 너머로 이전한다라고 선언했다.



소련의 공업 도시 수십 개를 지나 모든 설비와 수 백만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열차에 실렸고 수천km 떨어진 우랄 산맥 근처의 황무지로 이동했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황무지 한복판에 내팽겨친 채로 얼마 되지도 않은 식량에만 의지한 채 공장을 다시 조립하고 인력을 투입하여 공장과 도로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1942년에 작성된 독일 국방군 비밀 보고서에는 독일군이 소련 내부에 전쟁범죄를 저질러 75만 명에 으르는 신생아가 태어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독일군은 슬라브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소련에서 독일군에 의해 약 1,000만 건의 전쟁범죄가 일어났고 수치를 견디지 못한 소련인들은 자살을 하기도 했다. 훗날 소련군의 베를린 점령전에서 독일군의 이러한 전쟁 범죄는 그대로 독일에게 돌아왔다.


- 미네소타 대학 웬디 조의 논문, 아티나 그로스맨의 저술 -



"나는 비록 지금 죽어가지만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흘린 피가 강이 되어 독일군을 쓸어갈테니, 잘 있거라. 나의 위대한 어머니 조국이여.... 안녕"


- 독일군에게 포위 당해 전멸당한 브레스트 요새 지하에서 발견된 소련 병사의 낙서 -



스탈린은 소련 전역에 동원령을 선포했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총을 쥘 수 있는 소련 연방의 남자들은 모두 전선으로 집결하라!"



"조국을 구원하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극동 시베리아에서 수십 개의 정예 사단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 모스크바 공영 라디오 방송 내용中 -



"우리가 소련군 12개 사단을 섬멸하면 소련군은 즉시 12개 사단을 새로 편성했다."


-독일군 상급대장 프란츠 할더 -



"독일군은 하루 만에 소련군 2개 사단을 격파했다. 하지만 다음날 그들은 5개 사단을 보충해서 전투에 투입했다."



"소련 전역에서 최전선으로 수송열차를 타고 신병 수 백만 명이 몰려오고 있다. 소련 전역의 기차역 마다 소련의 신병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소련 연방의 젊은 남자란 남자는 모두 전선으로 모인것 같았다."



우리는 소련군 50개 사단을 증발시켰고 덤벼오는 60개 사단을 격파했다. 그리고 70개 사단을 추가로 궤멸시켰다. 우리는 총 180개 사단을 궤멸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이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핬다. 이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소련군 360개 사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각하, 소련군은 야전군 단대호가 96번까지 (병력 960만)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 D. 글랜츠 <독소전쟁사> -



"우리 독일의 정보국 나에게 소련에는 160개의 전투사단과 3,000여대의 전차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까지 400개 사단과 2만 여대의 전차를 파괴했다. 이제 우리 앞에는 500개의 사단과 3만 대의 전차가 있다..."


- 2차 세계대전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 -



"소련의 공장은 쉴 새없이 돌아갔다. 징집된 인원을 제외한 모든 소련의 남자들은 전선으로 보급할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했다."



독소전쟁 당시 국제 무기대여법(랜드리스 Lend-Lease)에 의거하여 미국에서 소련으로 엄청난 물자가 도착했다.


식량 4,281,910톤

석유 2,599,000톤

기관차 1,860량

기차 화물칸 11,181대

포탄 325,784톤

야포 96,000문

전차 및 장갑차 12,161대

전투기 및 폭격기 18,303대

트럭 409,526대

기관총 131,600정

야전용 전화가 422,000개

전투화 15,000,000만 켤례



"서부 전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모든 전선의 도로가 온통 진흙탕으로 변했다. 병사들의 전투화가 들러붙고 벗겨지고, 바퀴와 궤도가 헛돈다."



"소련의 장병들이여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 후퇴하는 병사들은 현장에서 즉결 처단하라."


- 아오시프 스탈린, 명령 227호 -



스탈린그라드에서는 7초에 한 명씩 독일군이 죽고 있습니다. 1초, 2초, 3초, 4초, 5초, 6초, 7초 방금 또 한 명이 죽었습니다.


- 모스크바 전시 라디오 -



이 세상에 이런 지옥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스탈린그라드에서 어느 소련군 지휘관이 남긴 말 -



"신병들이 전선에 투입되면 길어도 몇 일만에 전사하였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저들의 최정예라는 제6군 또한 끊임없는 소모전에 지쳐갔다."



"무자비한 시가전이었습니다. 기관단총, 권총, 수류탄, 총검, 야삽, 대검, 소총, 저격수, 화염방사기 모든 것이 동원되었습니다. 한 번은 독일군과 20m 앞 까지 대치한 적도 있었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죠. 여기에는 제가 있고 저기에는 독일군이 있고... 먼저 보고 쏘는 쪽이 이기는 것이었죠."


- 2차 대전의 잊혀진 증거, 스탈린그라드 전투, 참전용사 인터뷰 -



"독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추위였다. 독일군에는 동사자가 속출했다. 추위 때문에 전차도, 차량도 움직이지 않는다."



독일 최정예 제6군은 소련군에 의해 궤멸되었다. 독일 최정예 제6군 30만 명 중 6천명만이 살아서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반격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소련 488개 사단 전체가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으로 진격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우리는 모두가 피는 피로 값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수기 -



1945년 5월 2일 독일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이 독일 국회의사당에 소련의 깃발을 게양 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동원된 독일군 80%가 소련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2차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총 1,800만 명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패배했다. 동부전선에서만 총 1,075만 명의 독일군 전사자가 발생했다.



소련군은 독일과의 전쟁에 3,450만 명의 전투병력을 투입하였고 3,000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군인 전사자만 1,100만 명이 넘었다.


소련군 전사자 총 11,444,100명

소련군 부상자 총 18,344,148명



"소련의 1923년생 남자 80%는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 BBC -



소련군 전체 전사자 11,444,100명

소련 민간인 전사자 16,900,000명


소련에서는 약 2,900만 명이 전사했다. 이는 2차세계대전 전사자 중 6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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