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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의 광해군을 평가해야하는 6가지 이유

똥베이런 2017.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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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선조의 아들로 임진왜란을 이끈 왕세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국왕으로 역활을 하기는 했지만 반정으로 인해 왕자리에서 쫓겨난 인물로 유명한데요. 하지만 왕세자 광해군이 임진왜란에서 백성들과 조선군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광해군을 평가해야하는 6가지 이유



광해군 분조의 백성들의 독려와 이해


임진왜란 초기 한양으로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왜군을 보고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선조는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조의 도망으로 인해 당시 왕세자였던 광해군이 분조를 꾸리고 이천에서 활동을 하였는데요. 이러한 광해군의 분조의 활동은 백성들을 독려하고 이해시키는데 큰 역활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광해군의 독려에 의한 조선 각지의 의병활동 활발


대체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활동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전에 광해군이 백성들에게 나라를 지키기위해서는 의병 활동을 해야 한다라며 독려를 했다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당시 도망가있던 선조를 대신하여 조선의 국왕대행을 했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수 있었다고 합니다.



광해군 분조+백성+정규군의 네트워크


광해군의 분조는 의병들과 조선 정규군의 네트워크를 가동시키면서 게릴라 전을 하거나 수성전의 입장인 조선 관군을 지원하는 네트워크 역활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의병과 조선 관군의 중간입장에서의 네트워크 활동은 조선군의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한곳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선조의 도망으로 인한 국왕 대행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명나라의 요동으로까지 도망가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세자 광해군은 다른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요. 요동으로까지 도망가려고 했던 선조와는 다르게 광해군은 끝까지 왜군과 싸우려고 했다고 합니다.



유능한 조선 장수들의 광해군에 대한 신뢰


임진왜란 중기에 백성들과 더불어 조선의 장수들은 선조에 대한 신뢰가 많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왕세자 광해군의 의지를 보고 많은 조선의 장수들이 광해군에 대해 신뢰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은 지도자(광해군)의 의지가 확고함에 따라 더욱 더 신뢰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류성룡을 중심으로 한 전투지역에 대한 빠른 지원


광해군의 분조에는 조선군 총사령관 겸 영의정을 지냈던 서애 류성룡도 분조를 운영하였는데요. 류성룡의 직책이 조선군 총사령관임 만큼 류성룡을 중심으로 조선 정규군 및 의병들에 대한 지원을 확실하게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인 진주대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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