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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모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최초의 승리를 기록한 전투

똥베이런 2017.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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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벌욕심에 의해 발생한 전쟁입니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군 최초의 승리를 기록한 전투인 '해유령 전투'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일본군은 당시 신무기인 조총을 앞세워 빠른속도로 경상도 일대를 점령하고 한양으로 진격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진군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조선 조정은 당대 최고의 장수였던 '신립'에게 조선 정규기병 8천 명의 지휘권을 내려 왜군을 막고자 했는데요. 하지만 '신립'이 전략적인 실수로 탄금대에 배수진을 결국 8천의 조선 정규군은 전멸하게 됩니다.



신립이 패배하자 조선 조정은 도원수 김명원, 부원수 신각으로 하여금 한강을 방어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한강방어의 총책임자였던 도원수 김명원은 병력을 물려 재정비하려고 했지만 결국 군은 와해되어버렸는데요. 그 과정에서 부원수 신각은 와해된 병력을 최대한 수습하고 양주로 후퇴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양주로 후퇴한 부원수 신각은 유도대장 김양원, 함경도병마절도사 이혼과 합류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신각은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근처 해유령에서 왜군의 소규모 부대를 기습했고 70명의 왜군을 참수하게 됩니다. 이 전투는 규모가 워낙 소규모이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최초의 승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해유령 전투에서 조선군 최초의 승전보를 울린 신각은 선조의 잘못 된 판단으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마 신각이 임진왜란 내내 조선 정규군 지휘관으로 남았다면 굉장한 전공을 세운 장군으로 역사 속에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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