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역사학계에서 발해 멸망에 대해 논란이 많은 이유

똥베이런 2017.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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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9세기 들어 당나라의 혼란과 신라의 분열 속에서도 큰 위기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발해가 멸망해버리는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역사학계에서 발해 멸망에 대해 논란이 많은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발해는 일반적으로 자료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멸망 설에 대해 논란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해 멸망에 대해 거란(요나라)의 기병대가 수도 상경을 직접 타격해서 발해를 멸망시켰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발해는 고구려보다 영토가 넓었고 강성한 국가였는데 거란(요나라)에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멸망했다는 것을 미스테리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요나라 정사서인 <요사>에 의하면 "요나라 요태조의 2번 째 아들 야율요골이 이끄는 기병대는 발해의 수도 상경을 함락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요사>에는 발해 정벌군이 출동한 후 15일 만에 발해를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요사>에 의하면 요나라군이 발해 수도 상경성을 포위한 지 4일 만에 함락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고구려보다 강성했던 발해가 정말 허망하게 멸망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한국 고대 사학계에서 발해의 허망한 멸망은 최대 미스테리로 꼽힌다고 합니다.



발해의 존속기간은 228년으로 한국사의 주요국가들 중에서는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가장 강성한 국가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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