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발해에 대한 역사자료가 특히 일본 역사학계에 많은 이유

똥베이런 2017.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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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부흥세력과 말갈족이 힘을 합쳐 고구려 영토에 걸쳐 있었던 국가입니다. 또한 발해는 짧은기간 존속되었지만 한민족 역사 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던 국가였는데요. 발해 역사에 대한 자료가 한국 역사학계보다 일본 역사학계에 많은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국가로 엄연히 한민족의 역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의해 한민족의 역사인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고 하는데요. 하지만 동북아 역사학계 중에서도 중국 사학계보다 일본 사학계에서 발해에 대한 추측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역사학계는 발해사를 연구 할 의무는 없지만 이들이 발해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유는 20세기부터 발해사를 지속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일본 역사학계는 일본이 20세기 초반 만주사변과 만주침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발해사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일본 사학계는 발해사가 한국의 역사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자신들의 흑역사인 만주사변, 만주침공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이들은 20세기 초반 만주를 침공한 것은 중국을 침공한 것이 아닌 조선 땅을 수복하기 위해 침공한 것으로 정당화시키려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특히 발해와 교류를 했다는 기록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특히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기록 덕분이라고 하는데요. 일본서기에는 '발해 왕이 직접 서신을 보내 우리는 고구려 후손이 만든 국가며 우리를 고구려로 인정해라."라는 기록되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일본이 발해사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한국의 역사 중 일부라는 것은 증명해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일본 사학계가 한국 사학계보다 발해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흑역사를 덮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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