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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언론의 자유를 허용했다가 통제하게 된 사건

똥베이런 201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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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언론의 자유를 허용했다가 통제하게 된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반우파 투쟁'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중국 내부에서 발생한 '반우파 투쟁'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으로 인해 막대한 군자금을 쓰고 수 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살만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청나라 시기에 발생한 아편전쟁 이후 약 100년 간 국공내전을 제외하고는 평온한 국가를 이루게 되었고 1950년 대 중반까지 꾸준하게 경제성장을 했다고 하는데요.



한국전쟁 참전 이후 중국 초대 국가주석이었던 '마오쩌둥'에 의해 실시한 대약진 운동의 결과 농업 집단화가 되고 정책이 실패하자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1950년 대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보다 높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부의 모든 사회가 공산주의화되면서 농업국가의 특성 상 노동의 중요성이 사라지자 지식들의 불만은 쌓여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비판이 시작되자 마오쩌둥은 중국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며 '백가쟁명 백화제방'이라는 구호를 외치게 되는데요.



'백가쟁명 백화제방'이라는 뜻은 '모든 언론의 의견을 수렴해서 국가를 진보시키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마오쩌둥은 지식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다 하세요'라고 말했던 것인데요.



이렇게 마오쩌둥이 '백가쟁명 백화제방'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라라고 하자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 시위대의 경우에는 '마오쩌둥보다 장제스가 더좋아!'라고 하기까지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마오쩌둥의 언론의 자유 선언 이후 몇 달간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마오쩌둥은 갑자기 '반동 우파 세력이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오쩌둥은 그들을 강력하게 비판하기 시작했고 마오쩌둥의 발언에 의해 중국 공산당은 지식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 공산당 공안국에서 체포한 지식인들은 대략 50만 명에서 최대 70만 명이었고 일부는 사형되기까지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현재까지 중국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력하게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마 중국 공산당이 중국 언론에 대한 통제를 풀게 되면 중국이라는 국가가 마비가 될 정도로 심각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래도 14억 인구를 통제하려면 가장 먼저 언론을 장악해야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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