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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4

'징비록'에 기록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이 사망한 진짜 이유 류성룡이 집필한 '징비록'은 후대에 임진왜란 같은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성 된 것입니다. 또한 '징비록'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중국에 전파되면서 가장 유명한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징비록'이라는 정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 사망에 대한 기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징비록'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사망한 것이 아닌 선조의 시기를 인지한 자살로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징비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의 종군 이후 선조 역시 원균의 칠천량 패배를 인지하고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선조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이순신 장군을 다시 재기시킬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선조는 아시다시피 명량해전.. 밀리터리 2018. 1. 31.
전쟁 상황에서 전시재상이었던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의 공통점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전시재상으로 훈련도감 등 조선의 군사체계를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이라는 전시재상의 노력으로 인해 조선의 모든 전선은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종전 이후 350년 후인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재상이었던 윈스턴 처칠과 류성룡의 공통점이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은 자신들의 조국의 최악의 위기에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실질적으로 책임진 지도자였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또한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전시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은 자신들이 겪은 전쟁을 기록하는 회고록을 펼쳐내어 후손들에게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했다.. 밀리터리 2017. 8. 9.
우리가 잘 모르는 이순신 장군의 미스테리 5가지 안녕하세요. 이순신 장군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조선의 함대 지휘관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2번째 백의종군 후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재 임명 후 왜군과의 전투를 진행하였는데요. 많은 역사학자들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순신 장군의 미스테리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이순신 장군의 미스테리 5가지 조선수군의 재건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당시 12척의 판옥선만을 가지고 명량에서 승리한 후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명량해전 이후 노량해전에 참여한 조선 함대의 판옥선은 80여척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1년 2개월 만에 12척에서 83척에 가까운 조선 수군함대를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친 조선 수군 병력들과 판옥선들을 모았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재건할 수 있지 않았나 하.. 밀리터리 2017. 2. 25.
임진왜란 당시 정확히 기록된 한국측 역사서 3가지 안녕하세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장수들 또는 조선 조정에서 기록한 역사서에 대해 소개해드릴텐데요. 개인적인 주관으로 작성된 글이니 비난은 최대한 자제 부탁드리겠습니다. 난중잡록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경남이 선조 15년 1582년 12월부터 인조 15년인 1637년까지 57년 동안 조선 국내,외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기록물로 현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난중일기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임란 7논 (1952년 ~ 1598년)동안 군중에서 쓴 일기이며 정확하게는 1952년(선조 24년) 1월 1일부터 전사하기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2,539일간 기록한 일기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현충사에 비치되어 있으며.. 밀리터리 2016.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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