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칠천량 해전3 '칠천량 해전' 이후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추가 건조하지 않은 이유 거북선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한국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전략 병기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발명품으로 평가받는 거북선을 이순신 장군이 '칠천량 해전' 이후 추가 건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칠천량 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최악의 흑역사로 평가받는 해전입니다. 또한 '칠천량 해전'으로 인해 조선 수군은 전투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데요. '칠천량 해전' 이후 이순신 장군은 조선 조정에 의해 관직이 복원되었고 2차 백의종군 이후 복직 된 이순신 장군이 치룬 전투가 바로 '명량해전'입니다. 또한 '명량해전'에서 일본군의 우회로를 차단하면서 조선 수군은 남해안을 재장악하고 조선 수군 재건의 기반을 만들게 되는데요. 하지만 조선 수군은 백성들의 도움과 흩어진 병사들.. 밀리터리 2017. 12. 16. 더보기 ›› 한국 역사 상 최악의 흑역사 '칠천량 해전' 패배의 원인 칠천량 해전은 세계 해전 역사 상 가장 말도 안되는 전투로 평가받고 있는 한민족의 흑역사입니다. 특히 '칠천량 해전'은 무적의 조선 수군 함대를 전멸 사태로 만들어버린 최악의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한국 역사 상 최악의 흑역사 '칠천량 해전' 패배의 원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칠천량 해전'의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순신의 후임자였던 '원균'의 무능함이었습니다. 또한 '원균'은 조선 조정 대신들까지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 직책에 임명한다는 것을 말리는 직언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의 후임자에 적합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는 희대의 병크를 저지르게 됩니다. 실제 이순신 장군이 작성한 에도 이순.. 밀리터리 2017. 10. 10. 더보기 ››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재침략한 '정유재란'이 발생한 이유 '정유재란'은 정유년이 일어났다고 해서 정유재란으로 명칭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에 포함되어 있는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일본군이 무슨 이유 때문에 '정유재란'을 일으켰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선조에 의해 백의종군 당하자 그 후임으로 경상우수사 원균이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원균은 무능한 지휘능력 때문에 칠천량에서 일본 수군의 기습을 받고 조선 수군의 전력 대부분을 상실하는 실책을 만들게 되는데요. 원균은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의 판옥선 12척을 제외하고 모두 잃었고 조선 수군의 병력들은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도망갔다고 합니다. 특히 명량해전에서 사용 된 판옥선도 칠천량에 일본군의 기습 전에 빠져나간 판옥선들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렇게 이순신.. 밀리터리 2017. 9. 12.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