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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고려판 '주사위는 던져졌다'인 이유 3가지

똥베이런 2018.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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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은 역사적으로 군사 쿠데타로 인한 고려의 말명으로 보고 있는 사건입니다. 또한 역사전문가들 역시 위화도 회군을 고려판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위화도 회군이 고려판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평가받는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신진사대부 세력의 등장


고려 우왕 시절에는 고려의 기존 무신정권 세력은 거희 없어졌다 시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별초의 난 이후로 무신정권보다는 최영, 이성계, 최민수 등의 무인들이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나라를 지지하는 친원파 세력은 원나라가 중국 대륙에서 원나라가 패배할 위기에 놓이자 세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제거 되기 시작했는데요. 사대부들은 이성계를 지지하여 왕으로 내세우면서 무신정권 보다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을 설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의 건국


만약에 고려 우왕과 최영 장군의 주장대로 요동을 정벌하였다면 고려는 다시 전쟁이라는 참혹한것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성계의 경우에는 사실 요동정벌에 대한 반대의 의견이 있었고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면 분명 국력소모가 엄청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는 추측인데요. 어떻게 보면 이성계라는 인물이 중국 중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위화도 회군  당시 동북아시아의 형태를 잘 살펴 보면 명나라의 건국, 일본 전국시대의 개막이라는 점 동북아시아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사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중앙집권국가 확립


조선의 3대 국왕인 태종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집권체제를 완벽하게 구성하였습니다. 또한 고려의 사병제도는 폐지하였으며 군대라는 개념은 국가만이 가질 수 있다라는 것을 완벽하게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거희 대부분의 반란은 조선 백성들이 결합하여 일으킨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조선의 중앙 군사조직은 반란에 연류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조선이라는 국가는 적이 될지도 모르는 세력 그리고 적은 내부에서 절대 키우지 않는다라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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