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도쿄대공습에 대한 반응들
2차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항복을 하지 않자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해 폭격을 가하기로 하였고 폭격의 첫타자로 도쿄가 얻어맞은 탓에 가장 대규모의 피해가 있었으며 덕분에 수많은 폭격 중에서도 소이탄 폭격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도쿄대공습도 같이 거론된다.
2차세계대전, 도쿄대공습에 대한 반응들
일본의 반응
일본인들은 도쿄대공습을 십만 단위의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킨 대규모 공습으로 당시 생존자는 그날, 또는 그 3월의 어느날이라고 부르며 몸서리칠 정도로 매우 끔찍한 사건으로 회상한다고한다. 2차세계대전의 추축국이었던 일제의 입장에서는 재빨리 항복을 했더라면 민간인 피해가 없었을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반응
당시 미국의 입장은 일본 본토에 민간인 거주지와 군수공장이 뒤섞여 있어서 당시의 기술로는 둘을 구분해서 공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현재처럼 정찰 위성이나 토카호크 미사일, 엑스칼리버 포탄 같은 정밀타격 무기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것을 사용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정밀타격 기술이 없었고 민간인 피해를 염려해서 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미군을 공격할 무기들이 무더기로 생산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군은 손놓고 봐 줄수가 없었다.
실제로 미국의 입장에서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미군으로써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작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2차세계대전의 모든 참전국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하여 결집하는 총력전의 양상을 뛰고있었다는 것을 상당히 고려해보아야 한다.
중국의 반응
중국은 도쿄대공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바 있는데 중국 또한 일본으로부터 충칭대공습을 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당 정부가 충칭을 임시수도로 정하자 일본은 충칭을 집중 폭격하였는데 전쟁 수행의지를 꺾는다는 명목으로 고의로 민간인 거주지역을 폭격했을 뿐만 아니라 소이탄도 사용했다.
당시 충칭의 민간인 피해는 어마어마했으며 이로인하여 중국의 반일감정은 상당한 수준이다. 실제로 충칭을 더불어서 쓰촨 성도 여기저기에 폭격을 당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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