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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로부터 독립한 후 상해 임시정부는 왜 실패한 조직이 되었을까?

똥베이런 2018.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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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해방 이후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은 한반도로 귀국하면서 정치 및 여러가지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친미성향의 인물인 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친미 및 기존 친일파들이 등용되기 시작했는데요. 일제 해방 이후 상해 임시정부는 왜 실패한 조직이 되었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제 해방 이후 상해 임시정부 주석 김구를 비롯한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대부분은 한반도로 귀국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기 위해 여러 단체들이 연계하여 건국준비를 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상해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은 이념적인 성격이 아닌 하나의 통일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북한이 정권을 설립하자 남한 역시 정부를 설립하기에 이르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친미세력을 대표하는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단독정부가 수립되게 되었습니다.



사실 상해 임시정부 세력들은 당시 체재대립에 대한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미국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승만 박사는 미국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미국의 의도와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미국 CIA의 전신인 OSS의 기밀문서에 의하면 상해 임시정부 내부에는 약 28개의 파벌이 나뉘어져 있었고 그들은 상해 임시정부가 남한을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즉, 파벌 정치로는 절대로 한 국가를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던 것인데요.



상해 임시정부는 너무나 많은 파벌과 내부적으로 파벌싸움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2차세계대전에서 일제를 패망시킨 것이 바로 미국이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서 미국의 판단과 결정은 건국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엄청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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