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 상 장군이라는 직책을 두번이나 한 전설적인 인물
한국 역사 상 장군이라는 직책을 두번이나 한 전설적인 인물은 바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김홍일' 장군입니다. 김홍일 장군은 대체적으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한민족 역사 상 2번이나 장군의 직책을 맡은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한민족 역사 속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2번씩이나 장군의 직책을 한 김홍일 장군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홍일 장군은 일제강점기 시절 중화민국 국민당군에 입대하여 장교로 임관했다고 합니다. 또한 국민당군에 입대 한 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며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데요.
김홍일 장군은 일제 해방 이후 중국 국민당군에서 중장(2성 장군)으로 임명되어 중화민국 국민당군에서 근무했다고 합니다. 또한 김홍일 장군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에게 폭탄을 제조하거나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김홍일 장군은 한반도로 귀환을 고려하던 중 북쪽으로 갈까?, 남쪽으로 갈까? 고민하던 중 과거 연해주에서 일어난 자유시 참변 때문에 남한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8년 12월 10일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김홍일 장군은 대한민국 육군 준장에 임관되어 12329의 군번을 받고 군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김홍일 장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강방어선 작전을 국군 수뇌부에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서울이 함락당하자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으로 보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흩어진 국군 병력을 긁어모아 한강에서 7일을 버티는 기적을 보여주었지만 낙동강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인해 많은 병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해임되었다고 합니다.
김홍일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야전지휘관으로써 더 이상 재임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5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펀했다고 합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 국민당군에서 중장(2성 장군), 한국군 중장(2성 장군)까지 진급했기 때문에 오성장군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 9월 김홍일 장군을 중화민국 대사로 임명한 자리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김장군이 군인으로써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오성 장군으로 제대시켜야 하는데, 우리군에 그런 제도가 없다고 해서 그리 못했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김홍일 장군은 한민족 역사 상 2번의 장군을 지낸 유일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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