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청나라6 청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과의 평화를 유지해야만 했던 이유 청 태조 '누르하치'는 여진족의 우두머리로 후금을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누르하치'의 아들이 중국 중원을 점령하고 '후금'의 명칭을 변경하고 '청나라'를 건국하자 '누르하치'는 청 태조로 추대되었는데요. '누르하치'는 후금 건국 이후 조선과의 화친을 제시하며 조선과의 전쟁을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후금의 '누르하치'는 지속적으로 조선의 상황을 보고받으며 한반도 북부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여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상황이 많이 좋지 않자 '누르하치'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우리가 너네 좀 도와줄까?"라며 원병 파병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측은 "미안하지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거절했.. 밀리터리 2018. 2. 14. 더보기 ›› 임진왜란에 대한 우리가 잘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 6가지 임진왜란은 한국 역사에서도 많이 중요한 역사인데요. 역사에는 기록이 되어 있으나 현대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소개해드릴까합니다. 누르하치의 구원병 제안 류성룡이 기록한 역사 기록서에 의하면 임진왜란 말기에 청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에 구원병 파견을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하여 이를 거절했다고 하는데요. 이 부분은 현대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광해군의 오해와 진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인해 왕자리에서 쫓겨난 비운의 군주입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선졸르 대신하여 조선의 통수권자로 활동했는데요. 현대에 들어 광해군이 성군이다 폭군이다라는 평가가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를 생각해보면 광해군의 역사적 의견차이가 있는 것.. 밀리터리 2018. 2. 11. 더보기 ›› 역사전문가들이 본 한민족 역사 상 가장 굴욕적인 4대 참패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 전쟁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전투 4가지를 4대 참패로 평가하고 있는데요. 한국 역사속에서 황당하게 패배당한 한국의 전쟁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칠천량 해전 임진왜란에 일어난 굴욕적인 사건으로 지휘관이 무능하면 최정예도 몰살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잘 보여주는 해전입니다. 칠천량 해전으로 이순신 장군과 동거동락했던 무적의 조선함대가 전투기능을 상실하게 된 사건으로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 역사상 가장 황당한 패배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용인 전투 1592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있었던 전투로 임진왜란 초기에 일어난 전투입니다. 용인 전투에서 왜군 지휘관은 와키자카 야스하루로 알려져 있는데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1,600명의 군사로 7만에서 8만명 가량의 조선군을 후퇴시킨 전투라.. 밀리터리 2018. 1. 12. 더보기 ›› 전설로 내려오는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가 고려인이었다는 이야기 청나라는 중국 대륙의 마지막 왕조국가로 실질적으로 홍타이지가 명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청나라를 건국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홍타이지는 누르하치를 청나라 초대황제로 추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서민들이 기록한 야사에 의하면 누르하치와 건주 여진은 신라인 또는 고려인이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그 중 하나인 누르하치가 고려인이라는 전설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누르하치의 아버지가 수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달의 본명은 능창으로 견훤을 따라 후백제를 건국했다고 합니다. 능창은 실제로도 수전에 능했기 때문에 별명이 수달이었다고 하는데요. 일부 야사에 의하면 신라 말기에는 해적이라고 불리는 신라구의 병력은 수 천명 수준이었고 수달(능창) 역시 많은 신라구 집단 .. 밀리터리 2017. 12. 12. 더보기 ››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 7가지 동아시아는 고대사부터 왜구를 시작으로 일본과 역사적으로 악연 또는 인연이 매우 많은 국가입니다. 현재 2017년에는 독도를 포함한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는데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 7가지 임진왜란의 결과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수 많은 인명이 희생 당한 동아시아에서의 국제대전이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발발 이후 정유재란까지 많은 조선 백성들이 희생당했는데요. 물론 임진왜란 전부터 왜구의 침략과 약탈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현대의 한국인들은 일본하면 일제강점기를 포함하여 임진왜란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고 합니다. 황제국의 존재 중국 역시 일본과 고대사부터 오랜 악연 .. 밀리터리 2017. 4. 7.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