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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과의 평화를 유지해야만 했던 이유

똥베이런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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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태조 '누르하치'는 여진족의 우두머리로 후금을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누르하치'의 아들이 중국 중원을 점령하고 '후금'의 명칭을 변경하고 '청나라'를 건국하자 '누르하치'는 청 태조로 추대되었는데요.



'누르하치'는 후금 건국 이후 조선과의 화친을 제시하며 조선과의 전쟁을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후금의 '누르하치'는 지속적으로 조선의 상황을 보고받으며 한반도 북부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여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 상황이 많이 좋지 않자 '누르하치'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우리가 너네 좀 도와줄까?"라며 원병 파병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측은 "미안하지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거절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조선이 누르하치의 원병 제안을 거절한 것은 명나라와의 신의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말갈족이라고 불리던 여진족은 한민족과 오래 된 인연이 있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고대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진족들은 한민족의 전투능력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탈은 할 뿐이지 웬만하면 대규모 전면전은 피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실제 조선 건국 이후 임진왜란 직전까지 조선의 북방에는 여진족의 소규모 침략은 있었지만 대규모 침략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특히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 한 이후 후금의 영향력이 확대되어가는 가운데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조선을 적으로 돌리면 자신들은 엄청난 치명타를 입을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누르하치'가 여진족들의 우두머리로 재임하고 있을 당시에는 조선과의 전쟁을 웬만하면 피하려고 했던 것인데요.



청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과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던 이유는 명나라와의 전쟁이라는 큰 문제도 있었지만 조선군의 전투능력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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