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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상 가장 최악의 굴욕의 '흑역사'로 평가받는 전투

똥베이런 2017.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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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상 가장 최악의 굴욕으로 평가받는 전투는 제2차 고구려-수나라 전쟁 당시 발생한 '살수대첩'이라고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중국에서는 '살수대첩'을 중국 역사 상 가장 '흑역사'로 평가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정사서라고 할 수 있는 '자치통감', '수서', '구당서'에 의하면 1, 2차를 포함하여 고구려-수나라 전쟁 당시 동원된 병력이 대략 300만 명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수나라가 1차 고구려 침략 당시 동원한 병력을 30만 명으로 기록하고 있고 2차 침공에는 113만 명을 동원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수나라가 고구려를 1, 2차에 걸쳐 동원된 전투병력은 대략 143만 명 정도이지만 보급 및 기타 병과를 포함하면 대략 300만 명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제2차 고구려-수나라 전쟁 당시 수양제는 30만 명의 별동대를 구성하여 고구려 수도인 평양성을 직접 타격하는 작전을 계획했는데요. 하지만 수나라 별동대 30만 명은 공성전과 이동으로 인해 쌓인 피로로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한 수나라 별동대의 사기와 보급문제는 을지문덕 장군이 항복을 빌미로 적진에 들어가면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군의 실상을 파악하게 되는데요. 실상을 파악하고 돌아온 을지문덕 장군은 어느날 수나라 장군 '우문술'에게 빨리 '항복'을 하라는 서신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을지문덕 장군은 '우문술'의 서신에 '수나라군이 철군을 하면 나의 왕과 함께 수나라에 항복하겠다.'라는 서신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별동대를 이끌던 '우중문'은 을지문덕 장군의 서신을 믿고 수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결정하게 되는데요. 이후 철군하는 과정에서 살수(현재의 청천강)에서 고구려군에게 몰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총 30만 5,000명의 수나라 별동대 병사 중 2,700명 만이 요동을 건너 수나라로 돌아갔는데요. 이후 우문술은 수양제에 의해 처형당했고 수나라는 3차, 4차 침공을 지속했으나 결국 고구려를 정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나라는 멸망했고 중국 중원에는 당나라가 새롭게 건국되었는데요. 실제로 수나라는 당나라보다 인구가 많았고 때문에 당 고종에 들어서 수나라의 국력에 비등해졌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즉, 중국 역사 상 가장 강력했던 초강대국 수나라가 고구려군에 몰살당한 '살수대첩'을 흑역사로 평가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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