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의 배후는 누구인가?
1974년 8월 15일 서울시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8.15 광복절'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복절 행사가 진행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과정에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의 배후는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젊은 청년이 총을 발사했습니다. 젊은 청년이 발사한 총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와 '여고생 장봉화'가 총알을 맞고 사망하게 되었는데요.
저격 사건 이후 '문세광'이라는 젊은 청년은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는 조사 완료 후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국정원 조사 결과 문세광을 조사하던 담당 검사와 조사당국은 공식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요. '문세광'은 재일교포 2세로 북한의 대일 공작선이자 공작원 생활을 했다고 발표했으며 문세광은 과대망상주의자로 소설 '자칼의 날'의 애독자였다고 합니다. 또한 조사당국은 '문세광'이 국립극장에서 쏜 총은 일본 경찰의 것으로 오사카 미나미구의 한 파출소에서 권총을 훔쳐 국내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문세광'은 조사 과정에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박정희를 저격하라'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밝혔다고 하는데요.
물론,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에 대해 '문세광'이 범인이 아니라는 음모론이 존재하지만 '문세광'은 직접 자신의 입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라고 자백했다고 합니다. 즉, 1974년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여고생 장봉화가 총알에 의해 사망한 것은 북한에 의해 암살 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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