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큰 공을 세워 충무공이 된 장군 7인
한국 역사에서 국가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장군에게 내리는 시호인 충무를 받은 사람들을 높여 부르는 말로 고려에서는 3명이 충무 시호를 받았으며 조선에서는 총 9명이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전혀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영무 (조선의 개국공신)
제1,2차 왕자의 난의 공신으로 태종 이방원의 최측근입니다. 이성계의 가병 중 한사람으로 일개 군졸에서 일국의 정승이 된 사내로 조선 건국에 있어서 이성계를 추대하고 조선의 개국에 참여하면서 조선의 개국 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준 (이시애의 난 평정)
세종대왕의 4번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아들입니다. 이시애의 난을 남이, 강순 장군과 함께 진압하면서 병조판서로 관직을 하사받았으며 조선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인 27세에 영의정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인물입니다.
김시민 (임진왜란 당시 조선 진주성 목사)
1592년에 벌어진 임진왜란에서 진주성을 관군과 백성들과 함께 수성에 성공하였으나 전투에 맞은 부상으로 인해 전사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호남을 기준으로 재편성되면서 반격을 시작한 조선군의 기틀을 잡아준 조선의 명장이며 공을 인정받아 충무 시호를 받으면서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라고 현대에 이르러 부르고 있습니다.
이순신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했던 조선 역사상 최고의 지휘관으로 충무라는 시호를 하사 받아 현대에 이르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 중 1,2위를 다투를 조선의 전설적인 명장입니다.
김응하 (조선)
고려의 명장 충렬공 김방경의 후손으로 1616년 만주에서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침범하자 명나라 원군으로 출전하여 사르후 전투에서 적군의 기습으로 전사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사 이후 명나라에서는 요동백의 벼슬을 내렸으며 조선에서는 영의정을 추증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충신 (임진왜란)
전라도 나주 출신의 노비 출신 조선 중기의 무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17세의 나이로 광주목사 권율의 휘하로 들어가면서 종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한 명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의 옛 전남도청 앞에 있는 유동4거리 가는 길인 금남로가 정충신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합니다.
이수일 (임진왜란)
임진왜란 당시 충무 시호를 하사받은 2명의 충무공 중 한명으로 다른 한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인조시대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형조판서에 책봉되었으며 사후 이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성품이 청렴하고 강직하다고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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