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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어떻게 16세기 무적함대가 되었을까?

똥베이런 201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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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군은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전라좌수군 자체적으로 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순신이 이끌었던 조선 수군은 어떻게 무적함대가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직전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손죽도라는 곳에 왜군이 침몰하여 백성들을 약탈했다고 합니다.



당시 왜군은 적은 병력이었지만 손죽도를 점령하고 식량과 백성들을 약탈하자 전라남도 고흥군 일대에 부임하고 있던 녹도만호 정운이 손죽도 사건을 해결했다고 합니다.



왜군이 무장한 조총을 본 녹도만호 정운은 손죽도 사건을 경험 한 후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조선의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판옥선을 건조시키는 등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전쟁 준비를 했던 것인데요.



결국 1592년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침략야욕을 숨기지 않고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영 단독 출전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사실 전라좌수영은 전라우수영과 경상우수영 보다 전력면에서 많이 떨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선후배사이였지만 녹도만호 정운은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단독으로 면담 요청을 하고 전라좌수영 단독으로도 출전을 해야 한다는 주문을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당시 전라좌수영 소속으로 근무하던 병사들은 왜군이 자주 침몰하고 전투를 벌이다보니 최정예는 아니었지만 정예병력에 속했다고 합니다. 결국 녹도만호 정운과 더불어 전라좌수영 소속의 무관들이 이순신에게 강력하게 출전을 해야 한다고 이순신에게 주문했다고 합니다.



결국 전라좌수영 참모들의 강력한 출전 주문에 이순신 장군은 출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의 첫 전투였던 옥포해전에서 단 한명의 사상자를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과 그의 참모들은 강력한 군율과 훈련을 통해 무적의 조선수군을 육성했던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무적의 조선수군 함대는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리더쉽과 더불어 전라좌수영 참모들과 조선 수군병사들의 신뢰가 만들어 낸 결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군사전문가들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없었다면 조선이 역사속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대부분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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