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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상황에서 전시재상이었던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의 공통점

똥베이런 201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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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전시재상으로 훈련도감 등 조선의 군사체계를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이라는 전시재상의 노력으로 인해 조선의 모든 전선은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종전 이후 350년 후인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재상이었던 윈스턴 처칠과 류성룡의 공통점이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은 자신들의 조국의 최악의 위기에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실질적으로 책임진 지도자였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또한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전시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류성룡과 윈스턴 처칠은 자신들이 겪은 전쟁을 기록하는 회고록을 펼쳐내어 후손들에게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했다는 점 역시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과 자신의 겪은 일들을 적은 징비록을 편찬하면서 후손들에게 임진왜란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징비록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임진왜란이라는 최악의 실상을 알려주는 교훈과 같은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윈스턴 처칠은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재상을 담당하면서 회고한 "The Second World war"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했는데요. 류성룡과 더불어 윈스턴 처칠은 자신들의 조국의 후손들에게 국란을 극복한 재상으로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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