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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소련이 진짜로 전쟁에 돌입할 뻔했던 '우수리강 사건'

똥베이런 2018.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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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중국과 소련은 국경분쟁으로 인해 군대를 배치하여 전쟁까지 갈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국경분쟁으로 중국과 소련이 전쟁에 돌입할 뻔했던 '우수리강 사건'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1969년 우수리 강에 홍수가 나면서 중국명 전바오 섬(러시아 명 다만스키 섬)의 소유권이 불명확해지면서 국경지대에서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국경분쟁이 일어나기 전 중국군과 소련군은 서로 담배를 주고 받으며 어느정도 대화도 하는 편이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우수리 강에 홍수가 나면서 전바오/다만스키 섬이 누구 땅이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 싸움은 주먹싸움까지 이어지는데 주먹싸움이 일어나자 중국군과 소련군이 패싸움이 발생했고 이 패싸움에서 이긴 것은 소련군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패싸움 이후 중국군은 소련군에 대표를 선정해 1:1로 대결을 하자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련군 상부는 이 제안을 승낙했고 소련측은 '절뚝발이 중위'를 선수로 중국군은 '산둥꼬마'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들을 출전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결투에서 당시 중국군의 기본 격투기술은' 봉술'이었고 소련군은 '격투술'이었는데 봉을 든 '산둥꼬마'가 소련군의 '절뚝발이 중위'를 개패듯이 패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련군 '절뚝발이 중위'는 봉을 무기로 규정했고 패배듯이 맞은 '절뚝발이 정위'는 '산둥꼬마'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총을 발사한 것 때문에 결국 소련군과 중국군은 총격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1969년 3월 12일 중국군은 소련군을 기습했지만 소련군은 기계화부대였기 때문에 오히려 보병부대였던 중국군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요. 이 기습사건으로 인해 모스카바에서는 중국에게 "할힌골 전투의 교훈을 잊은 대가를 톡톡히 치뤘다."며 중국을 조롱했다고 합니다.



결국 중국군 80만이 국경에 배치되고 중국군의 배치로 인해 소련군 60만이 배치되어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과의 골치아픈 국경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핵 전쟁 시나리오까지 계획하는 등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대치는 미국이 개입해서 전쟁으로 확전되는 것을 막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미국은 소련에게 '너네 전쟁하면 우리가 중국측에 참전해서 우리 실력좀 보여줄꺼야.'라며 이야기했고 양 국의 140만 명의 군대는 철수하면서 일달락되었다고 하는데요. 미국 덕택에 살았다는 것을 안 중국은 소련 붕괴 전까지 다시는 소련을 자극하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우수리강 사건'은 공산주의권 국가들도 국경분쟁에 있어서는 전쟁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대표적인 공산주의권 대립 사건이라고 합니다. 결국 소련 연방이 붕괴하자 1991년 국경협정이 체결되어 국경분쟁의 원인이었던 전바오 섬은 중국에 귀속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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