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에 기록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이 사망한 진짜 이유
류성룡이 집필한 '징비록'은 후대에 임진왜란 같은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성 된 것입니다. 또한 '징비록'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중국에 전파되면서 가장 유명한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징비록'이라는 정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 사망에 대한 기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징비록'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사망한 것이 아닌 선조의 시기를 인지한 자살로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징비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의 종군 이후 선조 역시 원균의 칠천량 패배를 인지하고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선조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이순신 장군을 다시 재기시킬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선조는 아시다시피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에게 서찰을 보내 수군의 전투력이 일본 수군에 비하지 못하니 육군에 합류하라는 서찰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이순신 장군 2차 종군 이후 조선 조정의 대신인 이항복, 김명원은 선조에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재기용을 건의했지만 선조는 이항복, 김명원의 조언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또한 김명원, 이항복의 이순신 재등용에 대한 조언을 하자 선조는 조정 대신들이 모여있는 회의석상에서 그대로 나가버렸다는 것이 '징비록'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선조가 나간 후 남아 있던 조정 대신들이 모여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재등용을 의결을 통해 복직을 결정했고 조정 대신들의 결정에 의해 이순신 장군은 다시 통제사로 복직된 것인데요.
'징비록'이라는 임진왜란 당시 모든 사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기록서에는 이순신 장군 재등용에 대해 선조의 행동을 보고 자살설의 근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즉, '징비록'에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이 마지막 해전이 될 줄 알고 선조의 경계심과 시기심을 의식했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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