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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 당시 파월한국군 총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일화 4가지

똥베이런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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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창군기 이후 대한민국 국군 장병의 장병복지에 관해 가장 신경 쓴 장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을 소개할까 합니다.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유명한 채명신 장군은 장병들의 복지와 사기를 위해 힘써왔다고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황해도 곡산군 출신으로 평양 인근에서 교사로 지내다가 해방 이후 월남했으며 국방 경비대 시절부터 전국 전역을 전전했다고 합니다. 채명신 장군은 대한민국 국군에서도 반공인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채명신 장군이 무슨 이유에 있어서 국군 역사상 장병복지에 가장 힘쓴 국군 장성이라고 평가받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 일화


채명신 장군은 병사들을 자식처럼 배려한 일화도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일화로는 월남전 당시 보병의 전투력은 발바닥에서 나온다는 철학을 가지고 베트남 기후 특성상 매우 습한 기후 때문에 여름철이 되면 전 병력에게 군화를 벗고 맨발로 다니게 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병사들의 3/2가 무좀으로 고생하자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병력들을 휴양소에 들어가게 하여 해안가 백사장을 맨발로 걷게하여 무좀을 치료하게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일화


채명신 장군은 매일 저녁 취침하기 전에 병사들의 발을 반드시 씻게 하여 발에 냄새가 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병사들의 발에 냄새가 심하면 그 부대 중대장의 종아리를 쳤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무좀 방지와 발냄새에 꼬인 모기들을 막아 혹시 모를 말라리아 확산으로 인한 전투력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그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세번째 일화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전 파병 결정 이후 여의도에서 군퍼레이드를 하고 출발할 예정이었던 장병들의 면회를 허용해달라고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강력하게 요청해 허가를 얻었다고 합니다. 사실 국군 수뇌부에서 면회를 허용하면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을 우려해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채명신 장군은 오히려 면회를 허용해주면 가족들의 축복 속에 전선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네번째 일화


채명신 장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건 이후 국군은 미군에 대해 떠받들다시피 하는 풍습을 바꾼바 있다고 합니다. 채명신 장군의 부대에 미군 고문관이 있었을 당시였다고 하는데 지프를 타면 원래는 상급자가 조수석에 선탑하고 하급자가 뒷칸에 후탑하여야하나 국군 장성이 미군 고문관과 타면 대령인 미군 고문관은 조수석에 중장인 국군 제1야전군사령관은 뒷자석에 앉았다고 합니다. 채명신 장군은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고 자신이 지휘관으로 있었던 베트남전에선 이같은 풍습을 근절시켰다고 합니다. 채명신 자신이 이렇게 하니 한국에서도 이러한 풍습은 서서히 없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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