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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당의 부정부패가 만들어낸 한반도 분단

똥베이런 2017.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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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제2차 국공내전은 2차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중국의 내전입니다. 제2차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우리에게 중국이라는 국가로 불리고 있는데요. 중국의 부정부패가 한반도 분단에 어떤 영향을 행사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중국의 제2차 국공내전 당시 중국 국민당은 중국 공산당보다 수적으로 우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화민국의 수뇌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부정부패는 중국 인민들의 민심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제2차 국공내전 당시 민심을 얻고 남하하는 중국 공산당 홍군을 막기 위해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는 미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미군은 중화민국의 부정부패를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미군은 중화민국을 지원하지 않고 본국으로 철수하거나 일본으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정부패로 인해 중국 국민당은 중국 공산당 홍군에게 상하이와 난징을 함락 당하면서 타이완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분명 이기는 전쟁이지만 부정부패로 타이완섬으로 쫓겨나버린 것이죠.



결국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여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 공산당 홍군을 중국인민해방군으로 군대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의 승인을 얻어 한국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제연합군의 인천 상륙을 통해 연합군측은 한국전쟁에서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중국에 지원군을 요청하였고 중국 공산당 수뇌부는 북한에 지원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중국 공산당은 동북지역에 있는 제4야전군의 이름만 변경한 채 한반도로 병력을 파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경험이 많았던 중공군은 국제연합군을 상대로 남하를 지속하게 되었는데요. 중공군의 남하로 흥남부두 철수로 유명한 1.4 후퇴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전쟁은 1953년에 휴전협정을 통해 전쟁을 잠시 쉬게 되었습니다. 만약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부정부패를 제대로 통제했다면 중공군이 참전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전쟁이 일어난 배경에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현재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민족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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