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휴전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한국전쟁은 1953년 공산측과 연합국측이 휴전협상에 조인하면서 체결 된 휴전협정입니다. 또한 북한은 휴전협정 체결 이후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아 전쟁 휴율증을 어느정도 치유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휴전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김일성의 명령 하에 북한군은 불법으로 남한을 침공했습니다. 또한 북한은 중국, 소련으로부터 무기 및 병력을 지원받아 내려왔기 때문에 서울을 순식간에 점령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렇게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온 북한군을 국군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낙동강 전선을 형성하여 미군과 함께 부산을 지켜야만 했는데요.
낙동강 방어선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동안 국제연합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한국에 대한 파병이 최종 승인되면서 연합군이 인천에 상륙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 GHQ 미군정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를 필두로 연합군은 남한측에 참전하게 되는데요.
인천에 상륙한 연합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북한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북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군도 북상하여 연합군과 함께 평양을 함락시킨 후 북진통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으로 도망간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도와달라며 지원병을 요청했고 중국 공산당 수뇌부는 당시 중공 최정예 부대라고 불렸던 동북 제4야전군을 파병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중국인민지원군은 동북 제4야전군의 명칭만 바꾼 것으로 동북 제4야전군은 중국에 중국 공산당 정부가 수립 될 수 있도록 항상 전투 선봉에 섰던 부대라고 합니다.
이렇게 중공군이 참전하자 현재의 38도선이 형성되었고 연합국측과 공산측은 휴전협상에 돌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휴전협상이 체결되지 않자 연합측과 공산측은 지속적인 소모전만 발생했는데요.
하지만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하자 휴전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공산측 대표로 중국이 참여하여 최종 승인을 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당시 연합측과 공산측은 휴전협상을 최대한 빨리 체결하여 인명피해를 줄이고자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탈린이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소모전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한 사람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것이 참 어이없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스탈린 때문에 전쟁이 발발했고 스탈린이 사망하자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 참 씁쓸한 것 같습니다.
<글쓴이 추천 글 링크>
전설적인 싸움꾼들 중 유일하게 욕을 먹지 않는 인물의 정체
이 글이 재미있거나 유익하셨다면 로그인이 필요없는
아래에 있는 <공감> 버튼 한 번 눌러주세요
'밀리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성공한 쿠데타 5가지 (0) | 2018.02.08 |
---|---|
한국에 정착한 북한 탈북자들이 말하는 북한 주민의 분류 3가지 (0) | 2018.02.07 |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4가지 (0) | 2018.02.07 |
일본 내부에서 '안중근'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0) | 2018.02.07 |
한국 역사 상 장군이라는 직책을 두번이나 한 전설적인 인물 (0) | 2018.02.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