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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60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최강 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5가지 임진왜란 당시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면서 일본의 보급로를 모두 차단해버린 조선 수군이 강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순신의 참모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직접적으로 지휘하는 주류들은 이순신 장군의 참모들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지역 특성상 전라좌수영 인근에는 왜적들이 잦은 침입 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의 참모들은 지속적으로 전쟁 준비를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난중일기에 의하면 전라좌수군의 첫 출전인 옥포해전 당시 출전을 망설이는 이순신에게 출전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이 바로 이순신 장군의 참모들이라고 합니다. 강력한 군율 임진왜란 당시 작성된 징비록을 포함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강력한 군율로써 병사들을 통제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강력한 군율은 실제.. 밀리터리 2017. 12. 10.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가 역사적 사료가 높은 이유 난중일기는 조선 선조 시기의 무신이었던 '충무공 이순신'이 1592년부터 1598년 동안 군중(야전)에서 쓴 일기를 말합니다. 또한 '난중일기'는 2013년 6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가 역사적 사료가 높은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난중일기는 주로 당일의 기상 변화, 군영의 내용 등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사생활 역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난중일기는 간단히 적어놓은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난중일기가' 역사적 사료가 높은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 역사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난중일기'에는 당시 조선 조정의 움직임이나 상황과 이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이 강조되어 있어 징비.. 밀리터리 2017. 12. 4.
일본인들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일본 네티즌들이 보고 문서를 수정하는 '일본어 위키'에는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권율 장군'에 대한 문서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어 위키에 문서로 작성되어 있는 권율 장군은 '행주산성' 전투 문서에 작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본어 위키에는 '행주산성' 전투를 일본측의 승리로 문서가 작성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일본어 위키에는 권율 장군이 참전한 '이치전투'와 '독왕산성 전투'에 대해서는 문서를 작성해놓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러한 일본어 위키에서의 '행주산성' 전투의 일본측의 승리로 문서가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유재란 때의 행보와 겹쳐 권율 장군은 '한게 없는 장군'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즉, 결론적.. 밀리터리 2017. 11. 27.
우리가 이순신의 호칭을 '장군'으로 부르면 안되는 이유 현대 한국인들은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순신에게 '장군'이라는 호칭을 붙여 '이순신 장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라는 호칭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살아 있다면 매우 실례되는 호칭이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이순신의 호칭을 '장군'으로 부르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책은 임진왜란 당시 신설 된 직책으로 종2품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라고 합니다. 또한 '삼도수군통제사'는 알려져있다시피 실질적인 조선 수군의 총사령관이었는데요. 또한 이순신을 다루는 사극이나 영화에서는 이순신을 '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영감', '통제사영감'으로 불렸는데요. 실제 조선시대 당시에는 고위직 무관들에게 '장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 밀리터리 2017. 11. 27.
임진왜란 당시 '제주도'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자 조선 전 지역은 전쟁터로 바뀌어 전 영토화 피폐화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와 떨어져있던 제주도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전 영토가 전쟁터로 많은 백성들이 고통받았지만 제주도만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제주도 백성들은 육지에 전쟁이 일어났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실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제주도 역시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왜구가 상륙하여 약탈을 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을 침공한 일본군은 소규모 왜구와는 달리 대규모 정규군이었기 때문에 제주도를 점령해도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제주도를 점령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제주목사를 지낸 이경록이 제주.. 밀리터리 2017.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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