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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60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몽진(피난)을 결심한 이유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발발 초기 당시 조선의 국왕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선조'가 피난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선조는 왜군의 빠른 진격 속도에 놀라 최대한 왜군을 막고자 했습니다. 또한 왜군이 경상도 일대를 점령하고 북진하자 선조는 당시 최강의 장수 '신립'을 불러 병력을 소집하여 왜군을 막고자 했는데요. 하지만 '신립'이 이끄는 조선 정규군 8천 명과 충청도, 경비도 지원군 8천 명을 합쳐 총합 1만 6천 명이 탄금대에서 왜군에 의해 전멸당하게 됩니다. 또한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한 조선측은 도원수 김명원을 필두로 임진강 방어선을 구축하고자 병력을 재편성했는데요. 하지만 도원수 김명원은 임진.. 밀리터리 2017. 10. 27.
한국사 위인 중 까임을 당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 한국사 위인 중 유일하게 까임을 당하지 않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던 '이순신' 장군인데요. 이순신 장군이 무슨 이유 때문에 한국사 위인 중 유일하게 까임을 당하지 않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 0무 0패라는 전설적인 업적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대첩'의 승리로 남해안을 장악하면서 적의 보급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는데요. 또한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 의해 백의종군 후 '칠천량 해전'으로 인해 전투 능력을 사실 상 상실한 조선 수군 이끌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칠천량 해전'이후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은 12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일본 함선을 막아내면서 세계 해전사에서도 전설로 통하고 .. 밀리터리 2017. 10. 14.
한국 역사 상 최악의 흑역사 '칠천량 해전' 패배의 원인 칠천량 해전은 세계 해전 역사 상 가장 말도 안되는 전투로 평가받고 있는 한민족의 흑역사입니다. 특히 '칠천량 해전'은 무적의 조선 수군 함대를 전멸 사태로 만들어버린 최악의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한국 역사 상 최악의 흑역사 '칠천량 해전' 패배의 원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칠천량 해전'의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순신의 후임자였던 '원균'의 무능함이었습니다. 또한 '원균'은 조선 조정 대신들까지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 직책에 임명한다는 것을 말리는 직언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의 후임자에 적합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는 희대의 병크를 저지르게 됩니다. 실제 이순신 장군이 작성한 에도 이순.. 밀리터리 2017. 10. 10.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이 발생한 이유 한민족을 일본으로부터 구해 낸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전투는 바로 '노량해전'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 의해 백의종군 이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참패를 당하자 조선 조정에 의해 삼도수군통제사에 재등용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재등용된 후 첫 전투가 바로 세계 해전사에서 전설로 통하는 '명량해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명량 해전'에서 승리 후 남해안을 재장악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 수군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리고 '칠천량 해전'에서 흩어진 조선 수군 병사들이 이순신 장군이 복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군에 다시 합류하게 되는데요. 이후 조선 조정은 조선과 명나라 육군, 수군이.. 밀리터리 2017. 10. 8.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에 출전한 이유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전투가 시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긴 전투입니다. 또한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일부로 전사하기 위해 출정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살설'도 존재하는데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노량에 출정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왜군의 기습을 받고 전투력을 상실했을 정도로 전멸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한 후 명량에서 12척의 판옥선으로 300척의 왜선을 막으면서 조선 수군은 재건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이로 인해 조선 수군은 흩어진 조선 수군 병사들과 기존 휘하 장수들이 복귀하면서 칠천량 해전 당시 조선 수군의 전투력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복구를 달성했다고 .. 밀리터리 2017.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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