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민족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게 후퇴한 전투
한민족 역사 상 불패의 영웅으로 평가받는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게 후퇴한 전투는 바로 '순천 왜교성 전투'로 알려져 입니다. 불패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게 후퇴한 전투 '순천 왜교성 전투'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순천 왜교성 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1598년 9월 20일부터 10월 7일까지 벌어진 전투로 선조의 명령 하에 이루어진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순천 왜교성 전투'는 조명연합 육군, 수군이 공동으로 참여한 대규모 전투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조선 조정은 일본군 핵심 장군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순천 왜교성에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는 첩보를 수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전부터 조선 조정은 명나라와 조선을 기만한 '고니시 유키나가'를 꼭 사로잡아 처벌해야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조명연합 육군과 수군은 '순천 왜교성'에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잡으러 '순천 왜교성'에 연합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순천 왜교성' 공격을 시작한 조명연합 육군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의 강렬한 저항에 함락하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조명연합 육군이 '순천 왜성'을 공격하고 있는 동안 조명연합 수군은 인근 바다에서 화력 지원을 하는 등 후방 지원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명연합군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강렬한 저항에 '순천 왜교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후퇴하게 되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순천 왜교성' 전투에 투입된 조명연합군은 육군 3만 6천 명, 수군 1만 5천 명으로 대략 5만 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순천 왜교성 전투'에서의 조선 수군의 후퇴는 조명연합 수뇌부가 후퇴를 결정했기 때문에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순천 왜교성'에 문을 걸어잠그고 살아남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노량'에서 조선 수군에게 신나게 털리고 있을 때 재빨리 도망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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